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바보 의사 '장기려' 1

by david-h 2024. 4. 24.
반응형
반응형

"바보처럼 살다 간 사람"

 

누군가가 나를 '바보'라고 부르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자존심 상하고 불쾌한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평생 바보라는 말을 듣고 살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살았으며, 오히려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사였지만 집 한채 없이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겸손한 삶을 사셨던 분이 계십니다.

 

바로 바보 의사 '장기려'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저가 밤에 뒷문을 열어 놓을테니 집으로 가세요."

장기려는 어느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병원에 입원 했다가 퇴원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막막해 할 때, 이를 눈치채고 병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게 배려해 주었습니다.

 

"이 환자에게는 닭 두마리 값을 내주시오."

병이 나으려면 무엇보다 잘 먹어야 하는 환자에게 장기려가 써준 처방전입니다.

 

서울대, 부산대 의대 교수, 부산 복음병원 원장을 지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에게는 방한 칸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1947년 김일성대학 의과 대학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과장으로 부임할 때 "주일에는 일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부임했고, 환자를 수술할 때는 항상 먼저 기도하고 시작했습니다.

 

월남 후인 1951년 5월부터 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간이 병원을 섭립하고 피난민들과 전쟁 부상자들을 무료로 진료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복음병원'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1968년 당시 100원 하는 담배값보다도 적은 월 보험료 60원에 뜻있는 사람들과 '청십자 의료보험 조함'을 섭립하여 1989년 전국민 의료보혐이 확대될 때가지 20만명의 영세민 조합원에게 의료 혜택을 배풀었습니다.

 

국가보다 10년이나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의료보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그를 '바보'라도 불렀습니다. 그는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청지기의 삶을 살았습니다. 평생 주님만을 섬기며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가난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부요하게 했고, 집한 채가 없지만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뇌경색으로 반신이 마비될 때까지 병원이 없는 마을에 진료를 다녔습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싫어했고, 자신이 칭송 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평생을 오직 주님을 높이고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는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이분이 바로 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입니다.

 

현 시대 의사들과 크리스찬들에게 중요한 메세지를 주는 바로 그런분입니다.

 

 

 

 

 

반응형